- 엮고 나서
20세기도 종반으로 접어든 때 명연주가들의 연주는 LP나 CD로 들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젊은 음악 애호가들은 이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에피소드를 여기에 소개하는 연주가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방침에 입각하여 소개하고 있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나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또는 카잘스나 글렌 굴드처럼 이미 그의 자서전이나 평전에 나와 있는 연주가는 제외시켰다. 그리고 에피소드가 거의 없는 연주가들도 제외시켰다. 그러나, 푸르트벵글러에 관한 저서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의 정치적 입장과 연주론이 중심이어서 미망인이 생존시의 사생활을 포함한 진짜 평전은 발행할 입장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브루노 발터는 한 권의 자서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인간성 전체를 묘사한 책은 아직 출판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 책에 포함시켰다.
여기에 수록된 연주가들은 대부분이 '명장'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인물이지만 개중에는 데이비드 먼로처럼 33세라는 젊은 나이로 의문의 자살을 한 음악가도 수록되어 있다. '거장'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생애였지만 20세기 후반부터 활발해진 고대 음악 부흥운동의 선두 주자로 '거장'에 필적하는 활약을 했다. 먼로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 후에는 한창 꽃피던 고대 음악의 붐이 시들어버리거나 않을지 사뭇 염려스럽다. 그는 역시 '젊은 거장'이었음에 틀림없다.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한 듯한 여류 첼리스트 베아트리스 해리슨을 넣은 것은 -----
"국제적인 여류 첼리스트는 1세기에 한 두 사람밖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징크스가 그대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전전(前戰)에는 베아트리스 해리슨, 전후에는 재클린 뒤 프레가 바로 그랬다. 두 사람 모두 영국이 낳은 영국 첼리스트라는 것도 대단한 우연이다. 엘가의 명작 <첼로 협주곡 e단조>는 해리슨에 의해서, 그 진가가 발휘되었고, 이것을 뒤 프레가 계승한 형태로 되어 있다. 따라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여류 첼리스트에 한한다"는 징크스로 깨뜨려지지 않았다.
이 책을 집필하는 데에 있어서 에피소드를 중시한 것은 백만 번의 설명보다도 짧은 한 편의 에피소드가 그 사람의 인간성을 잘 말해 주기 때문이다. 에피소드는 주로 전승(傳承)으로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어서 인명이나 지명이 전승의 경로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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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거슈인의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할리우드에서 거슈인은 쇤베르크와 테니스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거슈인은 노 작곡가를 보고 제자로 삼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쇤베르크는 이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를 나쁜 쇤베르크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자네는 이미 좋은 거슈인이 아닌가!"
이 에피소드에는 몇 개의 다른 판이 있는데 '쇤베르크' 대신 '라벨' 또는 '스트라빈스키'로 된 것도 있다.
이들 세 사람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인 요제프 아크론으로 되어 있는 판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것이 진짜인지 가려낼 수는 없지만 '성공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작곡 기교를 더욱 연마하기 위하여 향학열에 불타던 거슈인이라는 천재의 '진실'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거슈인에게는 또 스트라빈스키와의 사이에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거슈인은 스트라빈스키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 때 스트라빈스키는 거슈인에게 물었다.
"자네는 1년에 얼마를 버는가?"
"대략 10만 달러,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자네의 제자가 돼야겠군."
스트라빈스키는 말년의 대담에서 이 에피소드를 사실 무근한 것이라고 부정하면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매우 즐거웠겠군."하고 덧붙였다. 인간적인 일이라면 무엇에고 흥미를 갖지 않고는 못견디었던 스트라빈스키는 사실무근한 에피소드에 진실이 담겨 있음을 묵시적으로 긍정하고 있었다. 이 에피소드는 거슈인에 관한 '진실'일 뿐 아니라 스트라빈스키의 인간됨을 잘 상징해 주고 있다.
20세기에는 연주가 중에도 절출한 인물이 많았다.
지휘계의 명물로 알려졌던 토마스 비첨 경의 에피소드집 같은 것은 자서전과 다른 사람이 쓴 몇 권의 전기를 빼고 책으로 두 권이나 나와 있다. 이처럼 에피소드가 많은 연주가는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돌이켜 보건대 20세기에는 격동의 세기였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연주에 온갖 정열을 바쳐 인간 정신의 불멸을 실천해 보인 '거장'들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는 것은 새로이 맞이할 21세기의 지침이 될 것이다. -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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