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등록일 : 2007-02-03 |
조회 : 649
|
어느 강원도 골짜기...
마을어귀 주막집 아낙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고바우가 있었다.
하는일 없이 빈둥거리며 마누라가 집어주는 돈 몇푼으로 노름도 하고 계집질도 하고..
놀고 먹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팔자라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에 나오는 날부터 늙고 병들고 죽어가기 마련..
팔자좋던 고바우도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게 되었는데
네 죄를 알겠느냐는 물음에 대답이 걸작이었다.
"대왕님! 저는 요.....
세상에 살면서 죄라는 죄자도 구경을 못했습니다.
힘없는 마누라를 다른 사내놈들이 집쩍거리면 도와주고 마누라 뒷바라지하며 마누라가 주는 돈도 배고픈 친구 밥사주고 술사주고..
그래도 남으면 부처님께 불전도 올리고 그렇게 착한 일만 골라서 하다 왔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호통치며 말했다.
"이놈아...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가 뭔지나 아느냐?
살인자도 도둑질한자도 그 과보가 다하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않고 무위도식하는 게으른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느니라.
일직사자! 월직사자들아!
저놈에게 놀고 먹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깨닫게 하라."
사자들에게 들리어 어딘가에 던져진 고바우...
한참만에 눈을 떠보니 다리아래 개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이럴 수가!"
자신도 강아지 몸뚱이로 어미개의 젖을 빨고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다리아래 떨어지는 달빛속에서
고바우 아니 고강아지는 참으로 기가막혀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데
웬 늙은 거렁뱅이가 다리밑으로 기어들더니
작대기를 휘둘러 강아지들을 내쫓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화가 난 강아지(고바우) 아무리 말을 해도 개소리 밖에 안나오니 기막힌 노릇이었다.
그런데...늙은거지가 "요놈 쓸만하겠다."며
가까이 부르더니 여러가지 재주를 가르쳐 주는데 강아지로선 식은죽 먹기였다.
비록 몸뚱이는 강아지가 되었지만 생각은 사람이니...
기막히게 재주를 부리게 되었다.
늙은거지와 합작으로 시장판에서 재주부리고 벌어 들이는 돈이 수월찮으니 그 때 부터 강아지는 호의호식하게 된다.
맛있는 고기덩이에 따뜻한 잠자리...
거기다 거렁뱅이의 총애를 받으며 사는 삶이 전생인간으로 살 때보다 못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배가 부르니 다른 생각이 자꾸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밑에 누워 이생각 저생각하고 있는데 다리위에 예쁜 암놈 강아지가 지나가고 있었다.
벌떡 일어난 고강아지...다리위로 올라가 암놈의 뒤를 쫓아간다.
따라가면서도..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
나는 사람인데 암캐 뒤를 따라가다니....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도망가는 암캐의 뒤를 죽어라고 쫓아간다.
암캐가 어느 집 개구멍으로 들어가자 역시 따라 들어갔지만 나올 때는 온몸이 성한데 없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니 집안에는 암캐의 신랑인 불독이 있을 줄이야 ...
걸을 힘도 없이 쩔뚝이며 돌아오는 고강아지는 기가 막혔다.
비록 몸뚱이는 강아지였지만 생각은 사람이 아니던가!
이 무슨 추하고 해괴한 꼴인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결국 고강아지 다리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고 말았다.
또 염라대왕 앞에 올 수밖에..
그에게 염라대왕 호통치며 말한다.
"이 놈이 혼날 짓은 골라서 하는 놈이구나.
일 안하고 놀고먹는 죄 다음으로 무서운 죄가 자살하는 죄인 줄을 몰랐던가
이 놈에게 더 무서운 벌을 내려라."
또 일직사자들에 의해 던져진 고강아지 눈을 떠보니 이번에는 마굿간이었다.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니 이번에도 역시 다리가 네개 달린 망아지였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좋다, 강아지노릇도 했는데 망아지노릇 못하겠는가."
역시 몸은 망아지지만 생각은 인간이니 얼마나 영특하겠는가.
세월이 흘러흘러...
장군인 주인과 함께 싸움터에 나가 공을 세우는데 일익을 담당하니
장군의 사랑과 그 대접이 이루말 할 수없이 좋았다.
"뭐 인간살이 보다 나으면 나았지 망아지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구나 !"
그런데..... 사람으로 살던 생각이 차츰 흐려지고
진짜 말로 변해가는 자신이 문득문득 두렵기 시작했다.
인간사 뿐만 아니라
말이 사는 세상도 똑같이 양지와 음지가 있었으니 싸움터에 나갔던 장군이 전사를 하게되고 그 집안은 몰락하여 풍비박산이 되고 만 것이다.
고말은 못사는 친척집으로 끌려가서 거친음식에다 죽도록 일만하니 말 그대로 죽을지경이었다.
어느 날도...
수레에 짐을 가득싣고 고개를 올라가는데 먹지를 못해 힘도 없고 정신도 가물가물 발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주인은 안 올라간다고 채찍으로 후려치니 고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냐, 때려라.
맞아 죽으면 이 고생도 끝이 아니겠는가.
맞아 죽으면 자살도 아니니 이 보다 더한 벌이야 받겠는가.
때려라...이 주인놈아 ! 어서 때려라."
주인은 진짜 화가나서 머리를 내려치니 고말 또 죽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염라대왕 앞에 올 수밖에..
"사자들아..
저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나를 기만하려 하였으니 더 뜨거운 맛을 보여 주어라."
말 한마디 못하고 어딘가에 던져진 고말..
컴컴하고 좁은 굴을 정신없이 헤쳐나와 보니 시원한 풀밭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옆을 보니 징그러운 큰구렁이 한마리가 있지 아니한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고 도망가다 뒤를 봐도 그래도 쫓아온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리고 ..
이놈의 뱀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뒤를 둘러보다 그만 까무러치고 만다.
결국 그 뱀이 자신의 몸뚱이였던 것이다.
이제는 사람이었던 생각도 가물가물....
그저 뱀의 본능에....
개구리를 잡아먹고 두더지를 잡아먹는 징그러운 구렁이가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가 들린다.
아........내 사람시절에 절간에서 들었던 범종소리였다.
소리따라 기어가니 목탁소리.. 법고소리..
염불소리가 惡心(악심)을 놓게 하고 뉘우침의 눈물을 주게 하니 고뱀은 그 소리를 잊지않으려 그 곳을 떠나지 않는다.
살생하는 대신 아침이슬을 따먹고 절에서 나오는 저녁연기 내음을 맡으며
염불소리, 독경소리를 듣고 살다가 제 수명을 마치게 되었다고 한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