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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1-05-03
조회 : 2134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음반 41위~60위

41. 조용필 <1집> 1980/지구레코드

작은 거인, 젊은 오빠, 가왕(歌王)...
이런 단어들이 한국 가요계에서 최초이자 영원한 오빠부대를 가진 가수 조용필을 가리키는 별명들이다.
'한국적'이라는 영원한 키워드를 가지고 30년 음악 생활을 해온 조용필은 버텨온 저력 하나만으로도 가요사에서 언급될 가치가 있을진대, 록, 발라드, 트로트, 민요, 동요에 이르는 그 음악까지 할 말이 많아 감히 거물이라 일컬어 마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이 겨우 '고철발명과', '원시소녀 똘비' 등의 만화를 보던 80년에 발표된 독집 음반 사상 국내 최초로 1백만 장을 넘긴 골든 디스크로(조용필과 그림자의 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떨떠름한 성공이 있기는 했지만)70년대까지의 그의 록 음악과 이후의 구분이 되는 공식 첫 독집 음반이다.
부드럽고 친근한 멜로디의 록 음악으로 록 음악을 한국 가요시장의 전면으로 부상시킨 공헌은 둘째치고 이 음반에 대한 설명이 그 수상기록으로 대신한다.
그해 TBC 방송가요 최고가수상, 최고인기가수상, 최고인기가요상, 주세가 작곡상, 서울국제 가요제 금상<<창 밖의 여자>>. MBC10대 가수상, 가수왕상, 최고인기가수상, 작곡상을 수상하고 다음해 KBS골든디스크상을 수상했다. (한유선)

42. 낯선사람들 <1집> 1993/예원레코드

고찬용(g,v), 허은영(v), 신진(v), 이소라(v), 백명석(v), 세션 : 최이철(g), 손진태(g), 조동익(b,prog), 김병찬(b), 장기호(b), 정원영(key), 박용준(key), 박성식(key), 김광인(key), 남궁연(d), 김영석(d), 김민기(d), 배수연(d)

낯선 사람들의 낯선 앨범. 90년대를 휩쓴 각종 열풍 가운데 하나였던 재즈 붐이 완전히 거품만은 아니었음을 증명했던 이 재능 있는 보컬리스트 집단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은 (말만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지칠 지경이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의 부박함을 또 한번 거론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유재하 가요제가 배출한 기린아 고찬용을 중심으로 이소라, 신진, 허은영, 백명석이 모인 맨하탄 트랜스퍼 지향의 보컬그룹이 선사하는 목소리들의 향연을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것이었다.
특히 첫머리의 그룹 소개곡 <낯선 사람들>부터 가사를 쓴 이소라의 목소리가 이미 그 매력적인 비음을 과시하기 시작하며, 작사와 리드 보컬을 맡은 <왜 늘...?>에 와선 그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하고 있다.
<비닐우산>은 무반주 재즈 보컬의 맛을 제대로 선사하고 있고, 동화 같은 가사의<해의고민>은 흥겹고 아기자기한 가운데 다양한 구음들이 선보인다.
전곡을 작곡한 고찬용의 비전대로 산뜻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은 좋지만, 한편으론 이 TV용으론 긴 쇼가 뭔가 하나 자극적인 '물건'으로 시장의 한구석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아쉬움이 든다. (조성희)

43. 따로또같이 <2집> 1984/대성음반

이주원(v,g), 나동민(v,g), 강인원(v,g)
세션: 최성원(g), 이영재(g,pcc), 이승희(g), 조원익(b), 안기승(d), 허성욱(key), 김광민(key), 우순실(v)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이들의 가장 큰 공로는 스튜디오 세션의 전문화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음반은 레코딩 스튜디도, 세션, 편곡의 중요성이 80년대 초반부터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서 부각되었지만 실제로 이것이 제대로 반영된 최초의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음반의 프로필에 등장하는 이름들이 80년대 내내 중요한 음반들에서 볼 수 있는 이름들이다.
레코딩 스튜디오로써 서울 스튜디오와 그곳 소속 엔지니어였던 최병철, 그리고 세션맨으로서 이 음반에 참여한 이영재(기타), 김광민(피아노), 안기승(드럼) 등은 80년대 연주인이 되었다.
또한 들국화 창단 멤버인 최성원(기타)과 허성욱(피아노)그리고 이장희의 동생 이승희(기타)도 연주에 참여했다.
우순실이 객원 보컬로 참여하여 노래한 <커텐을 젖히면>은 이 음반의 베스트 트랙이고, 이주원이 결혼하고 나서 처음 만든 곡이라서 감상적이라는 <너와 내가 함께>, 따로 또 같이의 음악적인 성향이 바뀌었음을 드러내는 록 프레이즈가 실린 <별조차 잠든 하늘엔>도 좋은 곡들이다. (박준흠)

44. U and Me Blue 1996/LG미디어

방준석(g,b,key,seq,v), 이승열(g,seq,v)
세션: 김민기(d), 김욱(d), 김성태(d), 강기영(b), 방준원(b), 김병찬(b),송홍섭(b), 장경아(key)

노이즈 가든의 데뷔 앨범과 함께 90년대 말을 대표하는 한국의 록 명반으로 기억될만한 수작이다.
전편에 녹아있는 외로움의 정서와 그 느낌을 담아내고 있는 리드보컬 방준석의 블로지한 보컬은 아주 매력적이며, 해외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만한 뛰어난 연주력이 이 앨범의 자랑거리이다.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없어>와 건조한 느낌을 주는<천국보다 낯선>등으로 이어지는 앨범의 수록곡들은 외국의 어느 밴드의 곡들 못지 않게 뛰어난 연주와 작곡을 자랑한다.
이 앨범에서의 옥의 티라면 어색한 한국어작사 실력인데, 부정확한 발음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의미가 불분명하게 이해되는 일부 곡의 가사들은 때로는 유치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편, 이들의 데뷔 때부터 지적되었던 오리지널리티의 부재는 2집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U2의 카피가 짙은 방준석의 보컬과 외국의 여러 밴드들을 모방한 이들의 사운드는 유&미 블루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동시에 이 앨범을 진정한 의미의 명반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국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수준 높은 연주와 이국적인 스타일의 작곡, 편곡, 보컬로 이어지는 이들의 독보적인 면모는 실질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측면에서 명반으로서의 가치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영대)


45. U and Me Blue 1994/나이세스

방준석(g,b,key,seq,v), 이승열(g,seq,v)
세션: 김병찬(b), 장경아(key), 신윤철(key)

94년 등장한 이들의 데뷔 앨범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적인 감성과는 너무나 차이가 현격한 어쩌면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앨범이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블루스와 당시 서서히 부상하던 모던 록에 기반을 둔 이 두 기타리스트의 음악은 그러나 그렇게 묻혀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대를 앞서간 앨범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들이 이 데뷔 앨범을 내었더라도 그처럼 외면 받았을까?
보통 이런 질문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가정한 표현이겠지만 우울하게도 '그렇다'가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적 흐름을 반드시 따라갈 이유는 무 데도 없지만, 지금 대중음악이 가는 방향은 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벼랑 끝을 향한 맹목적인 레밍의 행진일 뿐이다.
그 맹목적인 상업주의 행진 중에 두 음악인이 피운 블루스 넘버<꽃>의 소박하고 거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맹목적으로 붕괴를 향해 마구 돌진하며 주위의 어떤 경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와 한국 대중음악은 어쩌면 그렇게도 닮은꼴인지! (신승렬)

46. 다섯손가락 <1집> 1985/서울음반

이두헌(g,v), 임형순(v), 최태완(key), 이우빈(b), 박강영(d)

다섯 손가락의 1집은 80년대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록의 르네상스를 생각나게 해주는 앨범 중의 하나이다.
당시의 백두산이나 부활, 시나위 같은 언더그라운드 적인 성격이 강한 밴드들과는 달리 다섯 손가락의 음악은 스쿨밴드 특유의 풋풋함 같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과 아름다운 가사는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의 뒤에 쏙 들어오는 것들이었다.
이 앨범에는8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한번쯤은 불러 보았을 <새벽기차>,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과 같은 노래들이 실려있다.
이 노래들은 10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가사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노래들이다.
그러나 다섯 손가락의 음악은 새로움이나 실험정신 같은 것들과는 약간 거리가 있고, 다섯 손가락의 음악이 우리나라의 음악에 대한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음반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이러한 요소들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만으로도 그들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록이라는 음악 자체가 80%의 기존의 틀에 20%의 새로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황정)

47. 전인권 허성욱 <1979-1987추억들국화 "머리에 꽃을"> 1987/서라벌레코드

전인권(g,v), 허성욱(key,v)
세션: 최구희(g), 함춘호(g), 최성원(b), 주찬권(d)

전인권의 대표작은 들국화 1집이 아니다.
들국화 1집에서 그는<행진>등을 부른 단지 뛰어나 보컬리스트였을 뿐이다.
들국화 1집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오히려<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만든 조덕환이거나 뛰어난 세션을 보여준 최구희(기타)와 허성욱(키보드,피아노)이라고 해야 맞다.
이후 전인권은 86년 어정쩡한 들국화 2집에 참여한 이후 87년에 사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이 음반을 발표한다.
그리고 허성욱과 같이한 뛰어난 곡 작업으로 그가 이전에 "단지 들국화의 보컬리스트일 뿐"이란 인식을 불식 시켰다.
이 음반을 통해서 보여준 그의 작곡 능력은 정말 80년대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이는 다음해에 발표한 솔로 1집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70년대 말부터 축적한 노래부르기의 열망이 비로서 제대로 분출된 음반이었고, <북소리>, <사랑한 후에>, <머리에 꽃을>, <어떤...(가을)>는 그의 여린 rkat성을 느낄 수 있는 베스트 트랙들 이다.
이음반에 참여한 최구희와 함춘호의 연주 또한 '당대의 세션'이었다. (박준흠)

48. 한영애 <불어오라 바람아> 1995/디지탈미디어

세션: 이병우(g), 박청귀(g), 신윤철(g), 손진태(g), 김광민(key), 정원영(key), 이태윤(b), 강기영(b), 배수연(d), 김민기(d)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양희은 이후 가장 중요한 여자 뮤지션이고, 90년대에는 장필순과 함께 독보적이 존재이다.
77년 이정선, 이주호, 김영미와 같이한 포크 그룹 해바라기 1집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지만 가수로서의 '인정'을 받은 것은 그 유명한<건널 수 없는 강>이 담긴 86년 1집에서부터였다.
그리고 이 '인정'은 '폭발적인 지지'수준이었다.
원초적인 힘이 느껴지는 거친 음색의 그 곡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그 어느 누구도 보여준 적이 없는 놀라움이었고, '이렇게도 노래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이는 굳이 재니스 조플린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가수에게 있어서 노래 부르기의 본질을 생각하게끔하였다.
"여자가수란 이러해야 한다"는 이전까지의 고정 관념을 통렬하게 날려버린 그녀는 그래서 너무도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 그녀가 우리 세션 역사의 한 장을 제시한 88년 자신의 2집 '바라본다'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 93년 3집에 이어 발표한 본 작은 90년내 손꼽히는 명작이자 '여과된 정제미'를 보여주는 숨겨진 걸작이다.
"절망에서 무조건 달아나기엔 우리의 하루는 짧다는 것. 외로움에 한없이 부딪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길어지는 것"이란,<불어오라 바람아>, "일상 속에서 너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란 <너의 이름>은 이 음반의 백미이다. (박준흠)

49.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1997/킹레코드

세션: 조동익(b,g), 김영석(d), 박용준(key,g), 함춘호(g), 윤영배(g), 권혁진(g)

장필순의 본 모습이 제대로 음반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조동익이 음반 디렉터로 참여하기 시작한 92년 3집 이 도시는 언제나 외로워...부터였다.
<가난한 그대 사슴에>, <강남 어린이>등이 실린 3집은 가사에 좀더 치중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조동익은 참가로 지난 음반보다는 포크적인 느낌을 더 많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스터피스인 본 앨범이 97년에 나왔다.
사실 5집이 나오지 않았다면 장필순은 노래 잘 하는 여자 가수 정도로만 자리매김될 수도 있었다.
이 음반은 3집이후 조동익과 같이한 음악 작업의 결과가 완벽하게 그 결실을 맺었음을 보여주었고, 조동익 밴드(조동익, 함춘호, 윤영배, 박용준, 김영석)의 세션은 조동익, 윤영배 장필순이 공동으로 작업한 곡들에 아무도 역동적으로 매치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 음반에서 가장 놀랄 만한 점은 <그래!>, <넌 항상>, <사랑해 봐도>을 들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장필순의 곡 쓰기 작업이 완숙한 경지에 올랐다는 점이다.
한영애가 4집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그녀도 5집을 통해서 싱어 송라이터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박준흠)

50. 사랑과 평화 <1집> 1978/서라벌레코드

최이철(g,v), 김명곤(key,v), 이근수(key), 김태흥(d), 사보(b)

이들은 78년 당시 세션 연주자들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던 젊은 뮤지션들인 최이철(기타), 김명곤(키보드)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판 토토(toto)였다.
그리고 이들은 '전문 세션 연주자들이 만든 밴드'라는 계보의의 첫 번째 주자이고, 이는 이후 봄·여름·가을·겨울·야샤·쿠바등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한동안 뜸했었지? 가 실린 이 음반을 발표할 당시의 평은 '국내 최고의 연주 그룹'이 지배적이었다.
80년대에도 각기 연주자와 편곡자로 이름을 드높인 김명곤과 최이철이 그룹의 운영을 주도했던 이들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연주 자체에 천착했던 뮤지션들이었다.
이 음반에는 디스코 풍으로 김명곤이 편곡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베토벤의 <운명>이 실려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음악적인 실헌'이었다.
그리고 최이철의 마우스 튜브 연주가 뛰어난 <달빛>은 지금도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듣기 힘든 비범한 연주가 담긴 곡이다. (박준흠)

51. 김광석 <다시부르기1> 1993/킹레코드

세션: 김광석(v,har), 조동익(b), 김현종(b), 손진태(g), 김광석(g), 조준형(g), 박용준(key), 이민영(key), 김영석(d), 이정식(sax)

90년대 초 소극장 무대의 주역은 다름 아닌 자그마한 키에(하지만 목청은 누구못지 않은)사람 좋은 웃음을 짖던 김광석이었다.(공연을 마친 후 자기 따의 돌이라며 떡을 나누어주며 지었던 그의 미소는 정말…)
그가 3집과 5집 사이 발표한 비정규 앨범(베스트 앨범의 성겨도 띄면)인 다시 부르기 1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 솔로 시절의 곡, 그리고 미발표 곡들이 원곡과는 다른 편곡으로 실려 있다.(일부는 라이브 버전으로)
이 앨범에는 최백호의 <입영전야> 이후 입대하는 친구에게 불러주는 노래이자 훈련소에서 이등병도 되지 못한 훈련병들의 집단 눈물사태를 유발하곤 하는 노래가 된 <이등병의 편지>와 아직 뜨기 이전의 안치환과 공연할 때 듀엣으로 부르곤 했던<나무>, 대학가에서 오랫동안 불리었던<그루터기>,<광야에서>등의 새로운 곡과 <흐린 가을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등의 동물원 시절의 곡이 단순한 악기 구성의 간결한 편곡으로 실려있다. (김민규)

52. 산울림 <3집> 1978/서라벌레코드

김창완(g,v), 김창훈(b,v), 김창익(d)
세션 : 김난숙(key)

우리 나라에 신중현과 엽전들이 록이라는 형식을 도입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산울림에게 한국 록의 선각자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중현이 록의 원형질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산울림의 삼형제들은 끝없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정신으로 이미 20년 전 한국이라는 땅에서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싸이키델락, 펑크, 메틀 등의 갖가지 음악의 형식들을 선보였다.
엘리트 코스를 거친 이들 3형제의 우연한 시도인 <아니벌써>로 당시 4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여 대중음악계를 향해 포문을 연 산울림은 2집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변화, 혹은 진화의 모습을 예감케 하더니 3집에서는 한 걸음 아니 훌쩍 건너 뛴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철저한 상업적 패배로 끝났지만 3집에서 보여준 산울림의 모습은 자신들의 색깔을 가지면서 끝없는 실험을 한다는, 어쩌면 모든 음악인들의 지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두에 대한 훌륭한 전범 (典範)으로 기억된다.
이것이 3집이 산울림의 작품중 최고라고 할 수는 없을 지 모르나 최선으로 기억되는 이유이며 그들의 목에 감히 한국 록의 선각자라는 화환을 걸어주는 이유이다. (황정)

53. 동서남북 <1집> 1980/서라벌레코드

박호준(g), 이태열(b), 김득권(d), 이동훈(key), 김광민(key), 김준응(v)

80년 발매되었다가 88년 재발매 되고 98년 시완에서 또다시 재발매되었으나 인구에 회자되던 그 전설성 만큼 관심은 받지 못하고 있는 앨범이다.
한동안 <나비>라는 한 곡과 그 음반의 희귀성 때문에 마치 전설 속의 밴드인양 얘기됐던 동서남북은 사실 소문이 난 대로 전설 속의 프로그래시브 밴드라기보다는 프로그레시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던 밴드였다.
타이틀(은 아니었겠지만)격인<하나가 되어요>라는 곡은 보통 가요에 버금갈 뿐이지만 전체적으로 풋풋하면서 세련됐더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는 분위기는 유지를 하고 있다.
어쨌든<나비>라는 프로그래시브적 접근을 하는 곡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재발매로 인해 이들의 정체는 밝혀졌겠지만 그 촌스러운 재킷이 구매욕을 상실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특이한 사항을 들자면 양병집의 프로듀서를 했다는 것과 일요 예술 무대를 진행하는 김광민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일천냥'하우스에서 천 원주고산 음반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라는 정도...(한유선)

54. 듀스 1993/지구레코드

이현도(v,prog), 김성재(v)
세션: 민혁(prog), 이용민(prog), 손무현(g), 이정식(sax), 배정은(key)

"우리들의 어린 시절 이미 지나갔고, 어른이란 이름으로 힘든 직장 갖고, 생활하면서 이미 뽀얀 얼굴을 갔고, 그런걸 같고 고생이라 말하고, 고지식한 생각으로 남을 무시하고, 동심을 가진 어른들을 이상하다 하고, 전자게임, 프라모델, 만활 싫어하고, 그게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그런 사람을 보며 나는 답답하고, 얼키고, 설키고, 꼬이고, 막히고,/어렵게 생각하면 힘든 세상이자만 행복은 그리 먼게 아니야.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넌 행복한 거야"<with H20>는 랩에서 라임을 따지는 이현도의 관심사를 보여준 명곡이다.
그리고 데뷔 음반과 같은 해에 발표된 이 음반은 그들의 진일보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또한 이런 발전적인 모습은 95년 Force DEUX 때까지 계속적으로 보여주었다.
진정으로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서 자신이 스스로가 음악 감독이 되어서 명백하게 최상의 음반들을 계속적으로 내놓는 경우는 서태지와 이현도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다른 점은 서태지의 음반은 나올 때마다 열광적이 미디어의 추적으로 그의 작업 결과물이 낱낱이 해부되었지만, 이현도와 듀스는 그냥 댄스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장난 아닌 밀도를 가진 이현도의 음악에서 우리는 천재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 음반은 그러한 시발점이었다. (박준흠)

55. 시나위 <1집> 1986/서라벌레코드

신대철(g), 임재범(v), 박영배(b), 강종수(d), 김형준(key)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헤비메탈의 출발은 참으로 두꺼운 돛을 달고 시작되었다.
바로 이 앨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미안할 정도로 이들의 첫 앨범은 '정도'를 달린다.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사운드가 전체의50%이상을 차지하며 그것은 운용방식이 (전통적인 헤비메탈의 관습적인)'리프'와'솔로'로 구성되며 고음 역이 강조되는 보컬의 멜로디라인을 '그것을 구현'한 것을 넘어 세련된 '창착'의 견지에 이르러 있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앞서 말한 대로 '헤비메탈이 지녀야 할 이디엄을 모두 갖춰 제대로 이 장르를 소개할 수 있는' 차원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지닌 넘버이다.
<아틀란티스의 꿈>과 같은 곡은 자칫 장황해지기 쉬운 이 장르의 스타일을 잘 정리해 낸 수작이다.
'보컬을 맡지 않은 기타리스트가 프론트맨이 되는 록밴드의 규율을 잘 지켜낸 것도 분명히 주목해야 할 점이다.
뿐만 아니다 이 앨범이 '임재범 버전'과 '김종서 버전'의 두가지 버전이 존재하는 것은 콜렉터의 아이템으로 더욱 효과만점인 부분이기도 하다. (조원희)

56. 안치환 1993/킹레코드

세션: 안치환(v,g,har), 조동익(b), 김현규(b), 함춘호(g), 손진태(g), 김영석(d), 배수연(d), 박용준(key), 김효국(key), 이정식(sax)

민중가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노래운동가들이 합법음반을 발표하고 또한 그 음반들이 어느 정도 상업적이 수확을 거둘수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물고도 힘든 일이다.
집회를 위한 선동가의 성격이 짙었던 80년대의 민중가요들이 이제는 활동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햇볕 아래로 나오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함과 도시에 상업적인 멜로디와의 타협이 필요하다.
안치환은 이러한 경우의 성공적인 사례이며 동시에 민중가요를 '구호'가 아니 '노래'로서의 관점에서 그 가치를 한 단계높인 가수이다.
특히 그의 3번째 작업인 Confession은 류시화, 정호승, 나희덕 그리고 김남주의 시와 언제나 현실의 문제를 직유가 아니 은유로서 다루어 왔던 안치환의 가사 쓰기로 인하여 멜로디의 서정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가사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대학가만을 맴돌던 민중가요가 이제는 그 지지기반을 넓혀가기 위한 대안으로서 제시 되로 있는 그의 노래들은 그의 개인적인'노래'에 대한 진화와 함께 이 한 장의 음반을 시작으로 한 그의 뒤이은 후속 자들의 곳곳에서 그 풀뿌리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
즉 Confession은 90년대 제도권 진보 성향의 노래가 울리는 제도권 시장에서의 첫번째 자립 선언일 결과물일 것이다. (황정)

57. 삐삐롱스타킹 <원웨이 티켓> 1997/동아기획

박현준(g,prog), 달파란(b,prog), 고구마(v)

처음으로부터 삐삐밴드는 대중 친화적인 요소를 많이 첨가한 팬시 상품적인 타이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2번째 앨범을 내면서, 그러한 대중 친화적인 요소들보다는 그들의 '음악적의도'에 더울 노력을 쏟았으며, 결국 이 앨범에선 밴드의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그들의 변모된 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그들의 '카메라 모욕사건'만 아니었더라면 차트에서의 성적이 매우 높았을 만 했던 <바보버스>는 한국 대중음악의 '패턴'을 살펴볼 때 모욕사건 그 자체보다 더욱 <사건>에 가까운 음악적인 파격을 보였으며, 이전의 상업적이 성공에 조금도 경도 되지 않은 듯한 그들의 태도는<조금만 더>와<계단>등에서 더욱 드러난다.
이전 앨범들에서의 특징이었던 '자식의 과잉'의 가사들이나 '지나친 장난기' 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가운데,<12>의 서늘하며 날카로운 서정성은 이들의 앨범을 더욱 완벽하게 이끌고 있다.
특정한 장르에 이끌리지 않으며'삐삐'프로젝트들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으며 동시에 앨범 제목처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편도 승차권이기도 한 앨범이다. (조원희)

58. 이정선 <30대> 1985/한국음반

세션: 이정선(g,b,har,v), 변성룡(key), 최경식(key), 서정필(b), 유영수(d)

이정선은 초기에는 해바라기 등의 활동을 통해 모던 포크 풍의 음악적 성향을 보이다가 점점 블루스적인 경향의 음악을 하기 시작 하였고,솔로 활동과 신촌블루스 활동을 통해 자기만의 블루스 기타 플레이를 선보였던 음악인이다.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음반 중에서 초기작들은 포크음악의 색이 짙고 후반기의 작품들은 점차 블루스적 체취가 나기 시작하였는데, 30대는 이러한 블루스적인 완성미가 최고에 달한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뛰어난 어쿠스틱 기타 솜씨가 느껴지는 (우연히),한영애가 불러 더 유명해진 (건널 수 없는 강),그의 특유의 블루지한 느낌이 나는 (울지않는 소녀),(바닷가에 선들) 등의 수록곡들은 기타에 관한 교본이 될 정도로 일가견을 이룬 그의 기타가 빛을 발하는 곡이다.
그는 블루스의 기본 12마디 코드 진행에서 약간의 변형(리듬에 변형을 준다든지 등등)으로 그만의 독특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바로 그의 음악의 매력이 담겨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정선은 해바라기,솔로,신촌블루스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블루스 기타를 독창적으로 가요에 접목함으로서 다양한 가요의 장르가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59. 김광석 <4집> 1994/킹레코드

세션: 김광석(v,har), 조동익(b), 함춘호(g), 박용준(key), 김영석(d), 이주한(horn)

언젠가 대학교의 콘서트에서 그가 당시 방송순위 1~2위를 다투던 (사랑했지만)을 불러달라는 팬들의 아우성을 거절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무척 난감해 하며 "그 곡은 잘못 불렀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그런 게 아녜요."라며 그 원성(?)을 끝내 외면했다.
그는 이미 (나의 노래)를 발표한 3집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모두가 투쟁하던 80년대의 연가를 부르던 (그리하여 노찾사 출신의 변절이 평갈르 듣던)그는 이제 더 이상 연가를 부르는 것이 비난의 대상의 대상이 되지않는 90년대에 오히려(일어나)(자유롭게)가 담긴 이 앨범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그 곡들보다 (사랑했지만)으로 규정되는 그의 예전 모습들을 더 원하고 있었다, 많은 진지한 스타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박제시켜 놓고자하는 팬들의 요구에 괴로워 했고, 그들이 밟은 전철을 따라 요절로 자신의 생을 마친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자살한 한 아이돌 스타에게 포커스를 맞춘 언론과 대중은 죽은 그를 두 번 외면하였다.
커트 코베인을 매년 추모하지만 그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음악인들, 유재하 트리뷰트는 만들어도 김광석 트리뷰트는 만들지 않느 음악인들도 그 공범에 속할지도 모른다.

60. Various Artists 1997/서울음반

강산에, 시나위, 윤도현 밴드, 이중산, 봄 여름 가을 겨울, 퀘스천스, 이은미, 복숭아, 사랑과 평화, 김광민, 정원영 한상원, 한영애, 김목경, 논 피그

신중현은 60,70년대의 척박한 대중음악계에서 최초로 아티스트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사이키텔릭 록,소울 ,브래스 록,하드 록 등을 자신의 다양한 음악 세계에 흡수하여 '신중현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느 산울림 이전 한국록과 동격의 의미였고, 말그대로 근느 한국록의 역사이자 산증인이다.
또한 '신중현 사단'을 이끌었던 장본인으로서 자신의 보켤 역량에 문제가 있어서였겠지만 당대의 개성있는 보컬리스트(박인수,김정미,장현 등)들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라이브와 그가 발굴한 가수들의 음반에서 보여준 연주만큼 뛰어난 자신의 음반들을 갖고 잊지는 못하다.
본 음반은 그의 노래들이 새롭게 다시 조명되는 시점에서 그에게 영향받은 뮤지션들이 그의 대표곡들은 리메이크하여 2장의 CD에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부른 (미련), 이은미가 부른 (봄비), 정원영 한상원이 연주한 (석양) 그리고 참가자를 밝히지 않은 (미인)이 압권인 이 음반은 그 자신이 부른 노래 보다는 다른 가수들이 부른 그의 노래가 훨씬 빛남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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